
인재 육성 담당자는 어떤 믿음과 태도를 가져야 할까?
회사의 인사담당자, 특히 인재 육성과 개발을 고민하는 교육(HRD) 담당자로서 일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10년이 넘었으니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전혀 자신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저는 모르는 것이 많고 더 경험해야 할 것들도 많습니다. 특히 여러 사람들과 교류를 하면 할수록 '무림의 고수'는 세상에 너무도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럴 때마다 '00년 차'라는 숫자가 자부심보다는 부끄러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 나름대로 경험과 노력을 쌓아왔고 그 과정에서 체득한 것이 있습니다. 누적된 시간이 만들어 준 제 나름의 '관(觀)'입니다. 교육 담당자로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바탕에 두고 있는 믿음이 생겼고, 그 믿음 위에서 제가 해야 할 행동의 준칙도 생겼습니다. 제가 믿고 있고 실행하려고 노력하는 것들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1. 임직원은 교육 담당자보다 훌륭하다.
임직원은 교육 담당자보다 훌륭하다는 것. 이것은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고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제1원칙입니다. 한때 저는 인사팀 직원이라는 특권의식, 우월의식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었습니다. 보통의 임직원들이 다룰 수 없는 민감한 인사정보를 다루고 있고, 그래서 내밀한 것들을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 급여, 승진, 평가 등 임직원들의 회사 생활을 좌우할 여러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을 '특권'이라고 인식하고 그래서 '우월하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특히 교육 담당자의 경우, '내가 임직원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지적 우월감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임직원들은 애초에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난 결과물을 보여줍니다. 여러 실습과 토의, 발표를 할 때 의미 있는 인사이트들이 오고 갑니다. 현장에서 만나는 임직원들은 이미 더 많이 알고 있었고, 이미 더 많이 고민하고 있었으며, 이미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우고 옵니다. 교육 담당자가 그들보다 더 뛰어날 이유와 근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임직원은 교육 담당자보다 '훨씬 더' 훌륭합니다.
2. 교육 담당자는 임직원을 가르치려고 들면 안 된다.
임직원이 교육 담당자보다 훌륭하다고 믿으면 '임직원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꿔줍니다. 우리 회사의 구성원들은 '교화해야 할 대상, 바로잡아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 임직원들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질문을 품고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교육 담당자는 임직원들을 가르치려고 들면 안 되고, 질문의 답을 함께 찾아나가야 합니다. 때로는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이 마치 임직원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육 부서는 선도부가 아닙니다. '우월한 자'가 되어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려는 태도나 행동으로는 교육 담당자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교육 담당자는 자신이 기획한 교육 제도나 프로그램으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교육 담당자는 '완장'을 차고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화된 교육 제도나 프로그램으로 메시지를 설계하고, 강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교육 담당자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교육 프로그램과 강사를 통해 말하는 것이지 마이크를 잡고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3. 교육 담당자는 경험을 제공하여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 줄 뿐이다.
만약 교육 담당자가 임직원들을 가르치려고 든다면, 그 교육 담당자는 임직원들을 '변화시켜야 할 대상'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먹게 할 수는 없다'라고 믿습니다. 임직원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 생각, 믿음을 100%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착각입니다. 교육 담당자가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은 '행동'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리더십 교육을 통해 회사에서 바라는 리더십 행동을 할 수 있게 하거나, 직무 역량 교육을 통해 성과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게끔 유도할 수는 있습니다.
행동은 믿음에서 나오고, 믿음은 경험을 통해 생성됩니다. 교육 담당자는 경험을 설계하는 사람입니다. 강의장에서 임직원들은 바람직한 리더십 행동 또는 성과 행동이 무엇인지 배우고 최대한 실습해 보고, 그 과정에서 나온 시사점들을 나누고, 사무실로 돌아갔을 때 꼭 만들어봐야 할 변화를 다짐합니다. 교육 담당자는 이와 같은 일련의 경험들을 설계합니다. 이를 통해 믿음의 계기, 행동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줍니다. 따라서 교육 담당자는 '어떤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지' 목표를 분명하게 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과 경험을 고민하고 구조화합니다.
4. 그러므로 교육 담당자는 안내자이자 촉진자가 되어야 한다.
교육 담당자는 자신이 설계한 학습 경험과 성장의 여정에 구성원들이 잘 머무를 수 있도록 안내해 주어야 합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주인공 싱클레어는 엄격한 집안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학교, 사회 등 자신의 경험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여러 가지 성장통을 겪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안내자이자 성장의 촉진자가 되어줍니다. 싱클레어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자 이렇게 해봐'가 아니라, 싱클레어가 생각해 봐야 할 화두나 질문을 선물하며 함께 동행합니다.
교육 담당자는 회사의 구성원들과 성장의 여정을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팀장님! 그게 문제예요!'라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팀장님이 품고 있는 질문 즉, '어떻게 하면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변화와 성장의 여정이 강의장 안에서 이루어지든, 온라인 비대면에서 이루어지든, 사무실 등 일터에서 이루어지든 어디에서든 동행합니다. 그 여정에서 안내해야 할 때와 촉진해야 할 때를 알고, 어떻게 하면 Powerful하고 Impact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설계합니다.
HRD는 늘, 여전히 여러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긴축 경영이 되면 제일 먼저 역할이 줄거나 축소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효과나 효율을 의심받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늘, 여전히 '중요하고, 중장기적으로 반드시 챙겨야 할 것'이기도 합니다. HRD는 오랜 기간 도전해 왔고 응전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같은 후배들은 선배들의 그런 도전과 응전의 Practice들을 보고 배우면서도 변화를 꾀합니다.
세상의 모든 교육 담당자들은 각자 저마다의 철학과 믿음 위에서 일하고 있고, 늘 공부하며 성장하기를 좋아한다고 믿습니다. 제가 만난 교육 담당자들은 모두 그랬습니다. 위와 같은 믿음과 준칙들이 다른 분들의 도전과 응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글: 대림 HR팀 이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