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연봉 인상, 언제까지?

개발직 군 초봉 6,000만 원, 경력직 연봉 2,000만 원 인상, 전 직원 연봉 평균 800만 원 인상. 최근 IT‧게임 업계에는 연봉 인상 광풍이 불고 있다. 개발직 군에 한해 몇 년 전부터 소수 회사에서 시작된 인력 쟁탈전은 최근 넥슨, 넷마블 등 게임 업체를 시작으로 우아한형제들, 네이버 등 대형 IT 업체들까지 줄줄이 연봉 인상 대열에 합류하면서 완전히 불이 붙었고, 그 불길은 개발 직군을 넘어 IT‧게임 업계 전체 인력의 연봉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IT‧게임 업계 인력의 연봉 인상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며, 이러한 결과가 노동환경 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기업은 우수한 인력 확보를 통해 강화된 경쟁력을 바탕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소비자(고객)에게 제공함으로써 ‘고객만족’의 측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이에 따른 문제점도 간과할 수 없다. 자금 여력이 있는 대형 회사로만 인력이 몰리는 양극화로 인해 소규모 스타트업들은 극심한 구인난을 겪고 있으며, 이는 사람들의 불편을 개선해 삶의 질을 향상 시키고자 노력하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다. 또한 최근 발표된 게임 업체들의 어닝쇼크(Earning Shock)를 보다시피, 기업들의 과도한 연봉 인상이 기업 실적 악화라는 문제도 야기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개발자 연봉 인상, 언제까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한국소프트웨어 정책 연구소(SPRI)의 자료를 보면, 4대 유망 분야(AI, 증강현실, 빅데이터, 클라우드) 중 수요 대비 공급이 채 10%도 되지 않는 분야도 있으며, 소프트웨어 개발자 역시 2021년에는 31%, 2022년에는 23% 정도 밖에 수요를 채우지 못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미 몇 해 전부터 정부(42서울)와 네이버(부스트 캠프), 우아한형제들(우아한테크코스) 등의 IT 회사들은 개발자 부족에 대비하여 실무형 인재를 키우기 위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지만, 배출되는 인재가 실수요에 비해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고, 교육된 인재들이 성장하여 기업이 필요로 하는 ‘허리급 개발자’로 성장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므로 개발자 부족은 당연한 결과다.

 

반면에 현재 IT‧게임 업계 인력에 대한 적정 시장가치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시그널도 있다. 개발자 유치 경쟁에 나선 기업들이 “정작 실력 있는 개발자는 하늘의 별 따기이다” “현장에서 5년 가까이 경험해야 유망한 개발자로 성장할 수 있는데 지금 이런 개발자는 구하기 정말 힘들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이는 기업들이 연봉 인상책을 써봤지만 ‘인재영입에 효과가 높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결국 지금까지의 연봉 인상이 지난 과거 IT‧게임 업계 인력들이 겪은 열악한 처우에 대한 보상이며 적정 수준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면, 앞으로의 연봉 인상은 일부 ‘우수 인재’에게는 주어지는 ‘실력의 대가’이며 시장가치를 교란 시킬 정도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중소 스타트업의 채용 과정에서 봐도 경력 2~3년 미만의 주니어 개발자의 지원율은 여전히 높은 편이며, 다수 지원자의 연봉 수준이 현재 시장에서 이야기하는 가치에 대비하여 낮은 편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현재의 쟁탈전에 대해 ‘성과와 직무에 연결된 자정 작용이 있을 것이다’ ‘정부와 기업의 주도하에 인재가 빠르게 키워질 것이다’라는 인식이 기업 HR담당자 사이에 확산되고 있으며, 회사의 네임 밸류보다 일의 의미나 취향을 더욱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급여를 모으는 것’보다 ‘합리적인 소비와 재테크’를 통한 부의 축적에 더 관심이 많은 MZ 세대의 성향 또한 질주하는 IT‧게임 업계의 연봉 인상 릴레이에 브레이크를 걸 것이다.

대기업에 맞선 스타트업 HR 보상 생존법

‘적정 시장가치를 고려한 유연한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어차피 현 직장보다 연봉을 많이 줘야지 우리 회사로 올 텐데 보상체계나 Pay-band를 만들어 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라는 대표님도 봤고, 회사를 설립한 지 수 년이 지나고 직원 수가 200명에 달하는 회사의 CSO가 “이제는 우리 회사도 보상체계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라고 하는 것도 봤다. 이는 보상체계를 ‘현재’ 근무하는 직원을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상체계는 재직자뿐만 아니라 신규로 영입할 인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게 적정한 시장가치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IT‧게임 업계 인력들의 연봉이 오르는 상황에서 ‘새로이 영입하려는 인재가 시장에서 과대평가를 받지는 않았는지’ ‘우리 회사의 단계에서 꼭 영입이 필요한 인재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되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보상체계가 없는 회사의 처우 협의 상황을 예로 들어보겠다. 최종 면접을 마친 대표가 “좋은 인재입니다. 처우 협의를 진행해 주세요”라고 한다면, HR담당자는 후보자의 최근 연봉과 지난 3개년 간의 연봉 변화 추이, 희망연봉 등을 알아본 후, 대표에게 “현 직장 연봉이 OOOO만 원이고 최근 3년간 꾸준히 10%씩 인상이 되어 온 것을 볼 때, OOOO만 원에서 10% 인상된 금액이 좋겠습니다. 내부에 OOO님과 비교해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연봉의 책정에는 후보자의 역량, 직무의 난이도, 희소성, 기여도, 시장가치 등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텐데, 이런 고려가 전혀 없지 않을까? 만약에 회사 내에 ‘적정 시장가치를 고려한 유연한 보상체계’가 있다면 HR담당자는 다음과 같이 덧붙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Hiring Manager는 후보자에 대해 OO 레벨 정도로 평가하고 있는데요. 이 관점에서 볼 때 후보자의 현재 연봉 수준은 시장가치를 고려하여 만든 내부 Pay-band에 대비 다소 높은 수준입니다. 2차례의 면접으로는 후보자의 역량 수준을 명확하게 평가하기 어려운 점도 있으니, 연봉은 현 직장 수준으로 유지하되, 필요하다면 Sign-on Bonus(일회성)나 Stock-option(장기적 성장 가능성)을 통해 풀어보면 좋겠습니다”

 

‘적정 시장가치를 고려한 유연한 보상체계’가 없다면 회사는 입사 후보자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으며, 장기적 관점에서 후보자의 능력이나 필요성보다는 당장의 필요에 따라 채용을 하게 될 것이다(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HR담당자라면 누구나 잘 알 것이다). 또한 현재 재직 중인 직원에 대해서도 적절한 평가를 하지 못해 이탈을 발생 시키거나 굳이 잡지 않아도 될 직원에게 과도한 보상을 해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보상체계 수립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1. 시장가치 조사하기

몇 천만 원의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면 가장 쉽고 정확하고 빠른 방법은  HR 전문 전략 컨설팅펌을 이용하는 것이지만 비용이 부담된다면 HR담당자가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현재의 시장 가격에 대해서는 알기 어렵지만 전년도 이전의 정보는 쉽게 구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는 임금 직무 정보시스템은 2007년 이후 매년 국내 대다수의 기업들의 임금정보를 수집/분석하여 공개하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들이 사회적 이목을 피하기 위해 실제 인건비보다 낮게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고, 세금을 회피할 목적으로 현금을 직접 지급하기도 하고, 기업마다 천차만별의 복잡한 임금체계로 인해 비교가 어려웠다. 하지만 최근에는 투명성이 확보되고, 다수의 회사가 연봉제를 도입하고, 임금체계를 간소화하여 믿을 수 있는 정보라고 할 수 있다. 블라인드, 잡플래닛, 원티드 등에서 제공하는 정보도 유의미하다. 근로자의 사회보험료를 역산하여 근로자의 임금 수준을 산출하고 이에 현/퇴직자가 작성하는 실제 연봉 수준을 반영하여 보여주기 때문에 신빙성이 있다. 또한 연 초, 언론사에서 기사화하는 ‘사업별 주요 기업들의 보상 수준’을 통해서는 우리 회사가 설계한 Pay-band 중위값의 적정성을 알아보거나 Tier group의 수준과 비교를 해 볼 수 있는 좋은 지표이다. 매우 드물지만 간혹 채용공고에 노출하는 회사들을 통하거나, 주변 HR담당자 모임에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 직무 레벨별 가치 평가하기

직무가치는 ‘직무별 난이도’만 고려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속한 산업 군, 기업별 주요 성장 채널 등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일례로 이커머스 회사는 마케팅과 MD의 직무가치가 높은 편이고, 주류 회사는 영업, 플랫폼 회사는 기획으로 각각 편차가 있다. 따라서 우리 회사가 성장하는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직무가 무엇인지, 그 직무 담당자를 선발하는 것이 동일 산업 군에서는 얼마나 어려운지, 다른 산업 군 경력자도 활용할 수 있는지 등도 따져봐야 한다. 그다음에는 앞서 말한 임금직무 정보시스템이나 블라인드, 잡플래닛 등에서 제공하는 산업별-직무별 임금수준 자료를 참고하여 사내에서 정한 직무 레벨과 시장가치를 매칭하는 작업을 통해 직무 레벨별 가치를 정할 수 있다.

 

3. 구성원에 대한 역량 레벨링

네이버는 수평적 조직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지난 2014년 기존 지급제를 폐지하고 모든 직원을 ‘리더’와 ‘팀원’으로 나누는 2단계 직급제로 전환했다. 제도 시행 이후 내부적으로는 “보상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성과를 내는데 제자리에 머무는 것 같다” 등 ‘성장의 가시성’에 대한 직원들의 요구가 많았다. 이에 2020년 10월 네이버는 전문성, 역할, 영향력의 성장지표를 평가하여 5단계의 레벨제를 시행하고, 단계적으로 보상과의 연계도 검토한다고 발표했다.

역량 레벨링은 내부 구성원을 넘어 신규로 영입할 인재에 대한 평가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내부 구성원들에 대한 기대 역량과 역할, 보상 수준 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레벨 제도가 있다면, 채용 초기부터 ‘어떤 수준의 인재를 뽑을 것인가?’, ‘어느 정도의 보상을 지불할 용이가 있는가?’에 대해 명확하게 할 수 있고, 최종 입사 조율 단계에서도 후보자의 역량, 직무의 난이도, 희소성, 기여도, 시장가치 등을 고려하여 처우를 결정하게 됨으로써 over-pay를 하고 인재를 영입하는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 ‘성장의 가시성’을 고려하여 레벨을 정하고, 시장가치에 맞게 레벨과 보상 수준을 매칭하여 테이블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4. 다양한 보상 방법을 활용하기

기본급, 직무급, Sign-on Bonus, Stock-option 등 다양한 방법을 유연하게 활용하여 보상 정책을 세우는 것이 좋다. 중소 스타트업의 경우 시장가치 수준의 연봉을 줄 수 없는 경우도 있고, 후보자의 역량에 대해 확신하기 어려워 전 직장 수준으로 베팅하기에 고민되는 경우도 있고, 후보자가 단기적 보상(연봉)보다 장기적 한방(스톡옵션)을 기대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여 보상 제도를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보상체계는 위 1~3에서 말한 내용을 토대로 회사의 가용 범위와 직무 레벨을 고려하여 ‘기본급+직무급 구조’로  만든다. 그리고 시장가치 대비 부족분, 인재 영입의 필요성 등을 고려하여 Sign-on Bonus, Stock-option을 유연하게 이용하는 제도를 덧붙이면 좋다.

다수의 기업이 인재 영입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적합한 인재를 적정 가치(Right Value)에 영입하기 위해서는 ‘적정 시장가치를 고려한 유연한 보상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꼭 필요한’ 인재, ‘스타급’ 인재는 보상체계를 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인재는 극히 드물다. 시장에 몇 안 되는 스타를 찾고 영입하기 위해 불필요한 출혈 경쟁으로 스타트업의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회사의 수익성을 악화 시키는 일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글ㅣ김도형 설로인 경영지원실 이사
대구은행, 우아한형제에서 HR을 경험했고, 현재는 푸드테크 스타트업 설로인에서 성장하는 기업의 HR 구축과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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