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참 다른 스타트업 HR

대기업은 R&R(팀에서 구성원들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이 명확한 야구팀 같은 조직이다. 반면 스타트업은 R&R보다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선호하고 토탈사커를 지향하는 축구팀과 유사하다. 그럼 올라운드 플레이에 맞는 인재를 선발하고, 그에 맞는 HR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스타트업은 단순히 대기업의 축소판이 될 수 없다.

스타트업의 HR이 시행착오를 할 수 있는 함정은 필자처럼 대기업 출신 경력자가 스타트업을 대기업의 미니미, 축소판이라는 의식을 탈피하지 못한 채 HR을 하려는 것이다. 1년간 경험한 걸로 섣부른 결론을 내려보자면, 대기업 HR과 스타트업 HR은 전혀 다른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필자는 수많은 스타트업의 HR 컨설팅을 7년간 무료로 진행해 왔다(야매라서 무료로 했다).

그래서 스타트업 HR을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스타트업 창업도 준비했기에, 스타트업 HR은 이렇게 하고 싶다는 인사 철학도 뚜렷했다. 현재 필자는 스타트업 인사라는 ‘초심’, 인사임원이라는 ‘진심’을 매월 새로운 캘린더를 넘길 때마다 눌러쓰고 있지만, 지난 좌충우돌을 복기할 때마다, 내 연봉이 회사에서 허투루 사용되는 것 같다는 불안감이 악몽으로 투영될 때도 있다.

내부 추천으로 인재 채용, 단 불상사가 발생해도 비난 금지!

스타트업은 중소기업 중에서도 더 불안정하고 비즈니스 모델마저 수시로 변형되는 임시 조직인데, 정작 원하는 인재는 0.1% 대기업 내에서도 없는 인재상을 갖고 있을 때가 많다. 필자가 헤드헌터를 했을 때, 스타트업 채용 상담을 하면, ‘00대표님께서 찾으시는 인재는 구글을 비롯한 실리콘 밸리에 있겠죠?’ 라는 시니컬한 농담을 하곤 했는데, 합류하고 나니 그 어려운 일이 필자 업무의 알파요, 오메가다.

유명 채용 사이트에 공고를 올린다 한들 인재가 거들 떠 볼까? 거대 자본으로 IT 인재를 빨아들이고 있는 작금의 IT 인재 지형지도에서, 인재가 합류하는 게 벼락같은 선물 이상의 시기와 우연이 만난 기적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게, 각 영역에서 한국 최고 회사의 핵심 멤버들이 뜻을 더하겠다고 하여 몇 주 간을 기뻐하다가, 출근하기 직전에 배우자와 가족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안정된 직장과 고연봉을 접어두고, 북극성 같은 미션을 쫓다가 언제 망할지 모르는 회사에, 그것도 연봉을 낮추어 간다는 게, 결정을 심사숙고한 본인을 제외하고는 도박과 같은 일처럼 보일 것이다.

 

이런 비합리적 결정 가운데 가족마저 설득할 수 있는 논리는 ‘내가 인정하는, 또는 함께 일하고 싶은 직장인’ 이 앞서 선택한 회사라는 근거다. 그건 심리적으로도 큰 안전감을 전제하게 해준다. 사실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에서 구글 前 CHRO 라즐로 복도 강조하듯이 내부 추천은 인재를 찾고 스카웃하는 가장 검증된 방법이다. 다만, 근무하는 구성원 입장에서 내부 추천을 편안하게 하도록, 얼만큼 회피동기는 낮추고 접근동기를 높여주느냐가 관건일 거 같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에서 내부 추천의 접근 동기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메리트를 부여할 것이다. 당사도 현금 120만원 또는 120만원 상당의 IT 기기를 선사함으로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빼 놓지 말아야 할 핵심은 내부 추천을 했을 때, 불상사(?)가 발생해도 비난하지 않는 거다.

 

필자도 헤드헌터 기간동안 혹독하게 인재 보는 안목을 단련했다고 주장하나, 여지없이 내부 전력에 기여를 못한 인재를 추천하여 분위기를 흐렸지만, 대표이사는 개의치 않았다. 얼마 전에는 피플 앤 컬쳐팀(HR 부서) 루키가 내부 추천을 하여 합류한 마케터가 입사 1주일 내에 문자로 퇴사를 통보하는 특별한(?) 일이 발생했지만, 대표이사를 비롯한 선배들이 문제라고 문제 삼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일 잘하는 사람을 추천해도, 현재 스타트업 조직에 잘 적응하고 기여할 수 있는 ‘필요한 인재’로서 자리매김하는 걸 예측하는 것은 ‘지인지감(知人知鑑)의 통찰력’을 넘어서는 어려운 영역이다. 우리는 유비에게 제갈공명을 천거한 사마휘(司馬徽)의 안목을 갖고 있는 게 아니기에, 결과와 상관없이 자진하여 어렵게 내부 추천을 한 모든 구성원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그런 선의가 가득 담긴 과정으로 모인 호두래퍼 (당사의 구성원을 지칭하는 표현) 비중이 거의 절반 가까이 해당한다. (75명 중 35명) Startup 을 시작하려면, 4H, 즉 허슬러, 해커, 힙스터, (인하우스)헤드헌터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호두랩스의 많은 구성원들은 자발적 헤드헌터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 매우 감동적이다.

최고의 팀 : 첫째도 인성, 둘째도 인성, 그 마지막도 인성!

<머니볼(Moneyball)>이란 영화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서, 스타트업 인사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게 ‘스타트업 인사에 관한 최고의 영화’ 라고 소개하며, 호들갑을 떤 적이 있다.

<머니볼>은 실존인물인 메이저리그의 구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단장 빌리빈이 ‘출루율’을 기반으로 해서 연봉이 낮은 선수들을 스카웃하여, 강팀으로 변화시킨다는 내용이다.

필자가 주목한 건 스카웃(채용)의 기준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채용(!) 하려는 선수들에 대해, 전문(!) 스카웃터들이 각각의 근거를 제시하는 장면이었다. 매우 과학적으로 프로야구 선수들을 스카웃할 것 같은 기대와 달리, 기업에서 인재를 채용할 때 안목이라 주장하는 ‘감에 의존하는 것’ 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빌리 빈 단장은 ‘직관’ 보다는 데이터에 근거한 ‘출루율’을 강력히 주장한다. 그 실험은 일정 부분 성공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출루율이 높다는 것이, 안타를 잘 치거나, 홈런을 잘 친다는 게 아니라, 볼넷이든, 몸에 맞는 공이든 자주 나가면 되는 것이다.

다소 수비는 못하고, 나이는 많을 지라도 ‘출루율이 높은 선수’가 빌리 빈 단장의 ‘인재상’ 에 부합했던 거다. 과연 어떤 인재가 스타트업에 걸맞는 인재상일까? 사실 이건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그리고 ‘획일적으로 통일’ 시킬 수도 없다. 각 스타트업마다, 조직 내의 베스트 프랙티스에 해당하는 인재들의 교집합을 추출하는 게 의미 있는 작업일 수 있다. 그래도 보편적인 제안을 한가지 해보면, 창업 5년 이내엔 더욱더 ‘협조적인(Cooperative) 인재’ 를 찾아야 한다는 거다.

 

관련하여 비유하면, 대기업은 R&R(팀에서 구성원들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이 명확한 야구팀 같은 조직이다. 반면 스타트업은 R&R보다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선호하고 토탈사커를 지향하는 축구팀과 유사하다. 현대 축구에서 선호하는 선수는 뛰어난 개인기를 자랑하는 선수 못지않게 ‘활동량’이 많은 선수다. 캡틴 박지성 선수가 화려하진 않았어도 은퇴 후 더욱 진가가 높아지며 그리운 Player로서 회자되는 건 결국 그의 성실한 태도와 다양한 포지션을 지원하려는 협조적인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지성 선수는 자신의 포지션에서 기록적인 면까지 세계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유럽 리그에서 늘 상위권이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렇다. 스타트업 인재상은 판타지 같은 면이 있다. 다르게 문제를 바라보고 새로운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하겠다고 덤빈 멤버들인데, 평범한 인재를 데려와서 조기 축구를 하고 싶지는 않은 게 당연한 심정일 거다. 그렇다고 자기 중심적인 이기적 인재를 모셔와서 그의 센터 본능을 묵인한다면, 팀워크는 순식간에 휘발된다. 매일 슬리퍼 끄는 소리와 문자 그대로의 한 숨 소리마저 공유하는 스타트업에선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인성을 갖고 있는 인재가 합류해야 한다. 천재 한 명이 스타트업을 유니콘으로 만들 거 같지만, 이기적인 모습에 질려서 다른 멤버들이 모두 떠날 지 모른다. 스타트업은 개별적 존재가 시스템처럼 움직여서, 개성은 존중하지만 인성은 더욱 강조된다. 팀워크를 망치는 판타지 스타보다는 포텐셜이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인성이 감탄을 자아내고, ‘활동량’ 이 많은 ‘협조적인 인재(Cooperative Talent)’를 채용해야 한다.

필자도 대기업에선 함께 살 가족도 아닌데, ‘인성’보다는 ‘역량’이라고 빡빡 주장하는 부류였다. 하지만 스타트업에 와서 인재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Learning Agility

십 년 넘게 들었지만, 여전히 들을 때마다 거부감이 드는 표현은 사람이 제품도 아닌데, ‘스펙’이란 단어로 설명하는 거다. 대기업이 스펙을 보는 나름의 타당한 근거는 크게 2가지인데, 바로 ‘성실성’과 ‘학습력’이다. 다수가 인정하는 유명 대학을 갔다는 것은 특정 시점(흔히 청소년 시절)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중고등학교 때 하고 싶은 게 너무도 많은데, 부모나 학교나 획일적으로 대학을 가라고 한다. 그 권위에 순종하면서, 학생의 기본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는 것은 매일 출근하여(또는 원격근무 하면서)  8시간 근로시간을 준수하고, 딴 짓 안하고, 주어진 일을 책임감 있게 묵묵히 해야 하는 인재상에 부합한다.

또 한가지 학습력 측면에서, 주입식 교육을 열심히 받아서 높은 학업 성취도를 이뤘다는 것은 주어진 기업 교육과 선배들의 가르침에 일정 수준까지 따라올 수 있다는 방증이 된다. ‘독학’과 ‘스스로 깨우침’도 중요하지만, 선배들의 일정한 역할이 인정되고, 기업의 철학이 존중되는 교육을 통해 회사의 문화에 맞는 인재를 길러내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게 바로 정규 교육을 충실히 수행하며 따라갔던 ‘Learning Ability’, 바로 학습력이다. 그러니 스펙을 따진다고 거대 기업들을 비판만 할 수도 없다. 다만, 스타트업마저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이미 시작부터 거대 기업과의 ‘인재 전쟁’에서 진 게임이 된다는 거다.

스타트업은 비슷한 듯 다른 접근이 필요한데 학창 시절엔 게임에 열중했든 연애에 열중했든 후광을 일으키는 스펙 쌓기는 실패했지만, 유니크한 Learning Agility 가 필요하다. 왜냐면, 스타트업은 HRD 기능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경영진 역시 구성원들에게 외부 교육도 보내주고, 대학원 학비도 보태 주고 싶다. 그렇지만 자원의 우선 순위 배정에서 기업 교육은 늘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그 흔한 업무 관련 서적도, 인터넷 강의도 시원하게 지원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스타트업이야말로 ‘자기주도학습’ 이 가능한 멤버들이 절실하다. 정자세로 책 읽고 마스터에게 교육받지 않아도, 일하면서 귀동냥으로 듣고 좌충우돌하면서 역량이 일취월장하는 멤버들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필자는 연애도, 주식도 책으로 공부했고, 현재의 스타트업 입사 후 게이미피케이션을 이해하기 위한 게임과 개발 업무마저도 관련 서적을 읽고 동영상 강의,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학습을 하는 데 이런 스타일의 더딘 학습 방식은 지진아 필자 하나로 충분하다. 대화와 실무, 독학으로 여러 영역의 본질을 넘나드는 인재들을 보고 있노라면, 일렬로 나래비한 대학 진학을 강요함으로 청소년들의 Learning Agility를 가두는 게 미래 인재 육성에는 상극으로 느껴진다.

 

“하거나 안 하거나 둘 중 하나야…”  

 

《차이를 만드는 조직》이란 책의 마지막 문장은 영화 <스타워즈>의 제다이 마스터 요다의 대사다.

차이를 만드는 조직의 시작은 ‘서바이벌에 대한 절박함과 새로운 문제해결 방법을 도전하겠다는 결기’이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임금 격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대기업의 쩐(錢)의 전쟁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잣대를 뛰어 넘어 스타트업을 다니며 자잘한 재미와 위대한 미션을 발견하는 사람들에게 절로 리스펙트가 생긴다.

 

얼마 전 우리 회사는 연봉 100만원 차이로 입사를 고민하는 인재를 두고 내부적인 갑론을박이 있었다. 100만원에 인재를 놓치는 건 소탐대실이라는 주장도, 100만원에 선택을 정정하는 인재는 미션 오리엔티드 인재를 뽑는 원칙과 정면으로 대치된다는 의견도 모두 일리가 있다. 다만, 스타트업의 아름다운 이상과 발목을 붙잡는 차가운 현실 사이의 간극이 멀 뿐이다.

부모님과 친척들이 모르는 스타트업에 다니는 게 걱정을 일으킬 까봐 명절 때 새 명함을 꺼내지 못하고 만지작거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인재를 구인하지 못해, 더 이상 헤드헌터가 아닌 스타트업 스카우터인 필자에게 하소연을 하는 스타트업 대표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스타트업 일자리는 많고, 스타트업에 오고 싶은 인재도 많다. 분명 대기업 HR 은 부럽고 멋진 포지션에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스타트업은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기에 그 HR을 따라하면 망한다. 미지의 스타트업 HR 선택지에 모범답안은 아무도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대기업의 축소판이 아니다” 린스타트업 아버지 스티브 블랭크 교수 - Steve Blank

글ㅣ정돈희 호두랩스 People&Culture Team Head
대기업에서 사업부문과 인사 및 조직문화를 경험하고, 헤드헌터 및 인사 컨설팅 활약 후 스타트업 창업을 준비하다 에듀테크 호두랩스에 합류하여 엄마 역할, 코디네이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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